나눔과섬김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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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봇의 죽음의 의미
(열왕기상 21장)
찬송가 : 150장 “갈보리 산 위에"
 
내용관찰 _ 나봇의 포도원을 둘러싼 갈등
오늘 본문은 ‘나봇의 포도원을 둘러싼 갈등의 문제’로 시작된다. 

(1) 아합의 요구 (2절)
아합은 자기 왕궁 근처에 있는 한 포도원이 탐이 났다. 그 포도원의 주인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라는 사람이였다. 그래서 아합은 나봇을 불러 그 포도원을 자기에게 달라고 요구한다. 그에 대한 대가는 섭섭치 않게 주겠다고 약속한다. 

(2) 나봇의 거절 (3절) 
하지만 나봇은 아합왕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유는 ‘그 포도원은 조상의 유산 이였고, 율법에 가문의 땅을 마음대로 사거나 팔거나 하지 말라고 레위기 25:33절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3) 아합의 근심 (4절) _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 누움
아합은 자기가 가지고 싶은 것을 자기 손에 넣지 못한 것 때문에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 누워 버린다. 강력한 소유욕, 탐욕에 사로잡힌 것이다. 

(4) 이세벨의 전략 (5~15절) _ 사탄 마귀 (옛뱀)의 전략
옆에서 보다 못한 아내 이세벨이 아합에게 이렇게 말한다. 7절 말씀에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이 말의 의미는 “당신이 그러고도 한 나라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느냐?” “니가 그러고도 왕이냐?” 이런 뜻이다. 
5-15절에서 보여지는 이세벨의 모습은 영락없는 ‘사탄 마귀’ 곧 아담과 하와를 속여 선악과를 따먹게 했던 ‘옛뱀’의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옛뱀도 하와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악과를 따먹지 못한다고? 그러고도 너가 이 동산의 통치자라고 할 수 있어? 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너가 하나님 처럼 되어서 진짜 이 세상의 통치자가 될 수 있고, 그러면 너 하고 싶은거 마음대로 하면서 살 수 있어~” 
이세벨이 아합왕에게 하고 있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또 이세벨은 포도원을 취하기 위해서 계략을 세우는데 그 계략은 10절에 보면 불량자 두 사람을 매수해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나봇에 대한 거짓모함을 하게한 것이다. 
옛뱀 사단 마귀도 거짓말로 하와를 유혹했다. “하나님이 참으로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먹어도 너는 결코 죽지 않는다” 새빨간 거짓말이였다. 

(5) 나봇의 죽음 (19절)
결국 이세벨의 간계에 의해 나봇은 죽음을 맞이한다. 19절에 보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았다’는 표현이 나온다. 나봇의 죽음은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어 길거리에 버려져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 ‘개죽음’이였다. 
‘개죽음’이란 말은 ‘아무 의미 없는 죽음’을 일컫는 순우리말이다. 오늘 이 표현이 종종 등장하니 이해하시고 들어주셨으면 한다.

질문 _ 왜 하나님은 지켜만 보시는가!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하나님은 17절에 엘리야를 통해서 말씀 하시기 전까지 이 모든 상황을 그냥 지켜만 보고 계셨는가? 하는 것이다. 
나봇은 지금 율법에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지도 잘 모를 그 말씀을 지키겠다고 거기에 자기 목숨까지 내놓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님은 이 모든 상황을 다 아시고, 다 지켜 보고 계시면서, 어떻게 한번도 중간에 개입하시지 않고, 일이 이 지경이 되게 하셨냐는 것이다. 
이세벨의 간계로 불량배들이 나봇을 모함 할 때, 땅이 갈라지고 하늘에서 번개를 쳐서 그 사람들을 죽여서 심판하여 나봇을 모함했던 자들을 혼쭐을 내줘도 모자랄 판인데, 도대체 이 순간에 하나님은 뭘 하고 계셨느냐는 것이다. 
<적용> 우리도 살면서 때때로 도대체 이 상황에 하나님은 어디서 뭘 하고 계신가! 하는 불평과 원망이 터져 나올 때가 있다. 주위를 둘러봐도 하나님의 개입이라곤 찾아 볼 수 없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때가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비슷한 죽음
그런데 성경에는 나봇의 죽음와 같은 이런 비참한 죽음이 여러 곳에 더 등장한다.

(1) 세례요한의 죽음
신약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죽음은 바로 ‘세례요한의 죽음’이다. 세례 요한은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헤롯왕이 자기 동생의 아내였던 헤로디아를 가로챈 일에 대해서 돌직구를 날리며 정죄했다. 그 일로 인해서 헤로디아는 요한을 감옥에 가두는데, 헤롯의 생일날에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고 헤롯을 기쁘게 한다. 헤롯은 헤로디아의 딸에게 소원을 말해보라는데, 엄마가 시켜서 그랬는지, ‘세례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한다. 헤롯왕은 눈에 가시같이 여겨졌던 세례요한의 목을 베어 오라 명하고, 요한의 얼굴을 소반에 담아 헤로디아의 딸에게 전달한다. 
어린 여자 아이 한 마디 말에 ‘개처럼 죽임을 당한 세례요한’이였다.

(2) 예수님의 죽음
성경에는 또 한사람의 개죽음을 기록한다. 바로 예수님의 죽음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 대제사장들의 거짓증언으로 고발당해 로마의 법정에 서게 되고, 자기 제자에게 배신 당해, 당시 노예몸값에 해당하는 은30에 팔려, 개처럼 끌려가서 온 갖 수모와 고문을 당하시고, 결국 극악무도한 죄인들이 당한다는 십자가 형틀에 달려 비참한 죽임을 당하셔야 했다. 

그 외에도 스데반의 죽음도 그랬고, 전승에 의하면 수많은 사도들의 죽음도 그랬다.

과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_ 명분을 만들라!
우리는 다시 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하나님은 이 모든 죽음을 그냥 지켜만 보셨는가!” 

우리는 믿음이 좋아서, 질문하지 않고 분명 여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그런 상황을 직면하면 무너진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오늘 나봇의 죽음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였을까! 

이세벨은 간계로 나봇을 죽이는데, 그 간계의 핵심은 ‘나봇을 죽일 명분을 만드는 것’이였다. 두 사람의 거짓증언으로 나봇을 모함하여 나봇이 죽어도 되는 명분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께서는 ‘나봇의 죽음’을 통하여 ‘아합과 이세벨’을 처참히 심판할 ‘명분’을 얻게 된 셈이다. 결국 아합과 이세벨은 자신들이 만든 간계에 자신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결말을 맞이한다. 
왕상2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거짓의 영을 아합의 선지자들에게 넣어서 그들로 거짓 예언을 하게 하고, 아합을 죽음의 전쟁터로 내 모신다. 이세벨이 거짓말로 나봇을 죽였던 것 처럼 말이다. 
그리고 아합과 이세벨은 나봇이 당한 죽음 처럼, 자신들의 피를 개들이 핥아 먹는 ‘진짜 개죽음’을 당하게 된다. 하나님은 나봇이 당했던 그 수치와 모멸을 그대로 그들에게 되갚아 주신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뜻은 단순히 ‘원수 갚음의 문제’는 아니다. 

결론
나봇의 죽음이 가지는 더 깊은 의미는 ‘나봇’이라는 이름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봇’이라는 이름의 뜻은 ‘새싹’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가 살았던 ‘이스르엘’의 지명의 뜻은 ‘파종하여 심다’는 뜻이다. 그러니깐 이 이름의 뜻이 나봇이라는 사람의 인생의 의미를 잘 설명한다.
당시 사람들의 시선에는 나봇의 죽음은 말 그대로 ‘개죽음’이였지만, 나봇의 생명은 ‘아합과 이세벨 시대의 종말’을 가져오고,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거룩한 희생의 모종으로 사용하신 것이다. 
세례요한의 죽음도 그렇고, 예수님의 죽음도 그렇다. 모두가 당시의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개죽음 처럼 보이는 ‘의미 없는 죽음’ 같았지만, 사실 사탄 마귀의 종노릇하는 자들의 세상을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세우는 구원의 희생으로써 그 생명이 가치를 발하는 것이다. 

<적용> 우리도 때때로 죽을 것 같은 상황을 직면할 때가 있고, 또는 정말 죽음이 나의 눈 바로 앞까지 달려와서 나를 집어 삼키려 하여 두려워 떨릴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한다. 사람의 시선으로 볼 때 내 모습이 비참하고, 실패자 같아 보이고, 하나님께 버림 받은 자 같아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시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의 관점에서는 이 죽음 넘어에 부활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그 하나님을 바라 봄으로 다시 한번 죽음을 뛰어 넘는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오늘 있을 유아부 캠프를 위해서..
내일 있을 예배와 제자훈련 수료식 위해서, 수료하는 제자반 훈련생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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